태국 콘텐츠 진흥 거버넌스와 한국 모델 비교
태국은 '크리에이티브 이코노미 촉진청(CEA: Creative Economy Agency)'을 중심으로 한 콘텐츠 진흥 거버넌스 체계를 본격 가동하며, 동남아시아 콘텐츠 허브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이는 K-컬처의 글로벌 성공으로 입증된 한국의 콘텐츠 산업 모델을 벤치마킹하려는 전략적 시도로 해석된다.
본 분석에서는 태국의 콘텐츠 진흥 거버넌스 현황과 한국 모델의 핵심 성공 요인을 심층 비교하여, 태국이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태국 콘텐츠 진흥 거버넌스의 현황과 특징
🔹다층적 거버넌스 구조의 형성
태국의 콘텐츠 진흥 거버넌스는 정부 주도의 탑다운 방식과 민간 참여형 보텀업 방식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 핵심 기관인 크리에이티브 이코노미 촉진청(CEA)을 중심으로, 문화체육관광부(Ministry of Tourism and Sports), 디지털경제사회부(Ministry of Digital Economy and Society), 그리고 민간 콘텐츠 제작사들이 유기적으로 연계된 거버넌스 생태계를 구축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Thailand Creative & Design Center(TCDC)'의 역할이다. 2005년 설립된 TCDC는 창의산업 인큐베이터 역할을 수행하며,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에게 실질적인 비즈니스 지원과 글로벌 네트워킹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방콕, 치앙마이, 푸켓에 위치한 3개 거점을 통해 지역별 특성을 반영한 콘텐츠 개발을 지원하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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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방콕에 마련된 우리 콘텐츠기업 '제이샤'의 '미스터두낫띵' 팝업스토어 |
🔹문화 다양성을 활용한 콘텐츠 전략
태국 정부는 '타이니스(Thainess)'라는 고유 문화 정체성을 콘텐츠 경쟁력의 핵심으로 설정했다. 이는 단순한 전통문화 보존을 넘어, 현대적 스토리텔링과 첨단 기술을 융합한 혁신적 콘텐츠 창출을 목표로 한다.
대표적 성공 사례로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걸 프롬 노웨어(Girl from Nowhere)'가 있다. 태국의 사회 문제와 교육 시스템을 다룬 이 작품은 아시아 전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태국 콘텐츠의 글로벌 잠재력을 입증했다. 또한 태국 BL(Boys' Love) 드라마는 '2gether', 'I Told Sunset About You' 등을 통해 독특한 장르적 정체성을 구축하며 국제적 팬덤을 확보했다.
🔹동남아시아 허브 전략의 실행
태국은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동남아시아 콘텐츠 허브로의 도약을 추진하고 있다. 'Thailand Film Office'를 통한 해외 제작사 유치 정책과 함께, ASEAN 회원국 간 콘텐츠 공동 제작을 활성화하는 'ASEAN Co-production Fund' 운영이 대표적이다.
2023년 기준 태국에서 제작된 국제 공동 제작 영화는 27편으로, 전년 대비 35% 증가했다. 이는 태국 정부의 세제 혜택(최대 제작비의 20% 리베이트)과 원스톱 허가 서비스의 효과로 분석된다.
한국 콘텐츠 거버넌스 모델의 핵심 성공 요인
🔹체계적 정책 추진 체계
한국의 콘텐츠 산업 성공은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체계적인 정부 지원 정책의 결과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을 중심으로 한 원스톱 지원 체계는 콘텐츠 기획-제작-유통-해외진출에 이르는 전 과정을 포괄한다.
특히 '문화콘텐츠산업발전 5개년 계획(1999-2003)'을 시작으로 지속적인 중장기 계획 수립을 통해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확보했다. 2023년 발표된 'K-콘텐츠 2030 비전'은 콘텐츠 수출 250억 달러 달성을 목표로 하는 야심찬 계획이다.
🔹민관 협력 생태계의 완성
한국 콘텐츠 산업의 특징은 대기업과 중소 제작사, 정부 기관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생태계다. CJ ENM, HYBE, 넷마블 등 대형 콘텐츠 기업들이 글로벌 플랫폼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수많은 독립 제작사들이 창의적 콘텐츠를 공급하는 구조다.
정부는 '콘텐츠코리아랩' 등을 통해 스타트업 지원에 집중하는 한편, '방송통신위원회'의 콘텐츠 투자 의무제(방송사 매출의 일정 비율을 콘텐츠 제작에 투자)를 통해 안정적인 투자 기반을 마련했다.
🔹기술혁신과 콘텐츠의 융합
한국은 5G, AI, VR/AR 등 첨단 기술을 콘텐츠와 접목시키는 데 적극적이다. '실감형 콘텐츠 제작 지원센터' 운영과 '디지털 뉴딜' 정책을 통한 XR 콘텐츠 육성이 대표적이다.
BTS의 온라인 콘서트 'Bang Bang Con'(2020)은 팬데믹 상황에서 기술과 콘텐츠의 창의적 결합을 보여준 사례다. 전 세계 756만 명이 동시 접속하며 온라인 콘서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태국 콘텐츠 산업의 전략적 발전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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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창조경제진흥원과 업무협약을 체결 출처 : 중앙뉴스(http://www.ejanews.co.kr) |
🔹고유 문화 자산의 현대적 재해석
태국은 풍부한 문화 유산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현대적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데는 아직 개선의 여지가 있다. 한국이 '궁', '대장금' 등을 통해 전통문화를 글로벌 콘텐츠로 승화시킨 것처럼, 태국도 무에타이, 불교문화, 왕실 역사 등을 활용한 프리미엄 콘텐츠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태국 고유의 신화와 전설을 바탕으로 한 판타지 콘텐츠, 태국 음식문화를 소재로 한 요리 예능 프로그램, 태국의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한 어드벤처 콘텐츠 등이 유력한 선택지다.
🔹동남아시아 지역 협력 네트워크 강화
태국은 ASEAN 회원국 중 가장 활발한 콘텐츠 교류를 추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개별 국가 간 프로젝트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 보다 체계적인 지역 협력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ASEAN Creative Cities Network' 확대와 함께, 역내 OTT 플랫폼 공동 구축을 통한 유통망 확보가 중요하다. 인도네시아의 'Vidio', 싱가포르의 'Viu' 등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동남아시아 전역을 아우르는 콘텐츠 유통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디지털 전환과 글로벌 플랫폼 대응
태국 콘텐츠 산업의 가장 큰 과제는 디지털 전환이다. 전통적인 TV 방송 중심의 콘텐츠 제작에서 벗어나 OTT 플랫폼 맞춤형 콘텐츠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
넷플릭스, 디즈니+ 등 글로벌 플랫폼과의 파트너십 확대와 함께, 자체 플랫폼 육성도 병행해야 한다. 태국 최대 통신사 'True Corporation'의 'TrueID' 플랫폼이 대표적인 사례다.
🔹인재 양성과 교육 시스템 혁신
콘텐츠 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전문 인력 양성이 핵심이다. 태국은 'Bangkok University Creative Media', 'Rangsit University Digital Media' 등에서 콘텐츠 관련 학과를 확대하고 있지만, 여전히 실무 중심 교육과 산업계 연계가 부족한 상황이다.
한국의 '콘텐츠원캠퍼스' 모델을 벤치마킹해 실무형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해외 유명 영화학교와의 교환 프로그램을 통해 글로벌 수준의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
한-태 콘텐츠 협력 강화 방안
🔹공동 제작 프로젝트 확대
양국 간 콘텐츠 협력은 단순한 수출입 관계를 넘어 공동 제작으로 발전해야 한다. 한국의 기술력과 제작 노하우, 태국의 문화적 다양성과 동남아시아 네트워크를 결합한 시너지 창출이 가능하다.
구체적으로는 K-팝 그룹과 태국 아티스트의 콜라보레이션 앨범, 한-태 합작 드라마 시리즈, 양국 관광지를 배경으로 한 리얼리티 프로그램 등이 유력하다.
🔹기술 협력과 플랫폼 공유
한국의 앞선 디지털 기술과 태국의 동남아시아 시장 접근성을 결합한 플랫폼 협력이 필요하다. 네이버웹툰의 태국 진출과 라인 메신저의 태국 점유율(90% 이상)을 활용한 콘텐츠 생태계 확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한국의 VR/AR 기술을 활용한 태국 문화유산 콘텐츠 개발, AI 기반 개인화 추천 시스템 공동 구축 등도 고려할 만하다.
결론: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한 상생 발전
태국 콘텐츠 진흥 거버넌스는 한국 모델의 성공 요소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면서도, 자국의 고유한 문화적 자산과 지정학적 위치를 활용한 차별화된 발전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한국은 이미 글로벌 콘텐츠 강국으로 자리 잡았지만, 동남아시아 시장 진출과 문화적 다양성 확보를 위해 태국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양국이 서로의 강점을 인정하고 상호 보완적 관계를 구축할 때, 아시아 콘텐츠가 서구 중심의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진정한 대안적 가치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태국은 정책적 일관성 확보, 민간 투자 확대, 인재 양성 시스템 고도화를 통해 콘텐츠 산업의 기반을 더욱 견고히 하고, 한국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동남아시아 콘텐츠 허브로서의 비전을 실현해 나가야 할 것이다.